[연합뉴스] “남북 민간교류의 끈 끊어지면 안돼” 박창일 신부 (묻고 답하다)

[묻고 답하다] 박창일 신부 “남북 민간교류의 끈 끊어지면 안돼”

“남북·북미관계가 위기일 때 오히려 민간이 나서야”
“北천주교 신자들 눈빛에서 신앙인의 진정성 느껴져”
㈔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

㈔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

(서울=연합뉴스) 전성옥 논설주간 =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민간교류의 생태계가 거의 모두 파괴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어도 남북교류가 기대한 것보다 활성화하지 않은 것은 그 탓이 큽니다. 민간교류의 끈은 어떤 상황에서도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평화3000 운영위원장인 박창일 신부는 “남북관계가 갈등과 위기로 치닫는 과정에서 북한의 대남협력사업에 종사했던 경험 많은 일꾼들이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겨갔다”며 “남측의 민간단체들이 여러 가지 협력사업을 제안해도 인력 부족 탓에 북측에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평화3000은 ‘나눔·평화·화해’라는 기치 아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과 지구촌 이웃들을 도우려고 2003년 11월 결성된 민간단체다. 평화3000은 창립 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박 신부는 천주교 사제 가운데 가장 많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평양의 장충성당에서 100차례 가까이 미사를 집전했다.

 

– 남북관계가 너무 비핵화 문제에 묻혀 있다는 지적이 많다.

▲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를 맞았지만 기대한 것만큼 남북 간 민간교류가 활성화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한 탓이지만 딱히 그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부 관계자들도 남북관계의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 폐기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있으니까 민간에 대해 ‘좀 천천히 가 달라’고 얘기한다. 남북관계를 해칠 수 있는 돌발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남북 민간교류는 정치적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지속해서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남북이나 북미 관계가 위기일 때 오히려 민간이 나서야 한다. 특히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교류의 끈은 결코 끊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더 존중해줘야 한다.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지속가능한 교류협력사업을 펼칠 수 있다.

 

– 교류 당사자인 북한은 어떤가

▲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간교류의 생태계가 거의 모두 파괴됐다. 이 과정에서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에 몸담았던 경험 많던 일꾼들이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민화협은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통일선전부 산하 기구다. 젊은 층도 민화협에서 일하는 것을 이전처럼 선호하지 않아 새로운 일꾼들이 유입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남측의 민간단체가 여러 가지 협력사업을 제안해도 북측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북측의 인력 부족 탓이 크다.

근본적으로는 북한도 변해야 한다. 새로운 남북관계에 맞춰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남에서는 수많은 민간단체가 남북협력사업에 나서지만, 북에서는 민화협이란 단일 창구만 있다. 그러다 보니 효율성도 떨어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가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민화협도 남북의 전문단체와 기구끼리 직접 접촉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혀줘야 한다.

 

– 대북지원이나 협력사업의 또 다른 어려운 점이라면.

▲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 가하는 제재)이 큰 장애다. 밀가루, 식용유 등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품목이나 비닐, 비료 등 영농자재는 대북제재 품목이 아니다. 평화3000의 경우 이런 물품을 중국에서 사들여 북한으로 보낸다. 그런데 국내 은행이 중국은행으로 송금을 안 해주려고 한다. 자칫 세컨더리 보이콧에 저촉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품목은 육로를 통해 북한에 직접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물품을 보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중국 우회로를 버릴 때가 됐다. 남북한 당국이 협력해서 물품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한다.

 

– 북한의 천주교는.

▲ ‘평양의 장충성당은 선전용이 아니냐’, ‘북한의 천주교 신자들은 진정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그동안 많이 받았다. 장충성당은 1988년 10월에 세워졌다. 북한 내 유일한 성당이다. 교황청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장익 신부가 이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내가 처음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올린 때는 2000년 1월이다. 이때 북한의 천주교 등록 신자는 3천 명이고, 장충성당에 나오는 신자는 100여 명가량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신자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2000년 7월에 수녀 한 분을 모시고 장충성당을 방문했다. 그때의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이 든 장충성당 신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수녀의 팔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더라. 6·25가 발발하기 전 어릴 때 보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수녀를 본 감동이 컸었던 것 같다. 그 눈빛을 본다면 어떤 주교, 신부, 수녀가 이들이 신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당의 지시에 따라 일요일만 성당에 와서 신자 행세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은 6·25전에 성당에 다녔던 신자들이다. 세례받은 이도 많다.

 

–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활동은.

▲ 신부가 되려면 교회법이 정한 공부를 해야 하고 공동생활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다. 북에는 신학교도, 신부도 없다. 장충성당은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다. 미사는 크게 ‘말씀의 전례(典禮)’와 ‘성찬의 전례’로 나뉜다. 성찬의 전례는 신부만이 집전할 수 있다. 장충성당 신자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평신도들이 모여 ‘말씀의 전례’만 올린다. 북한 신자뿐 아니라 평양에 머무는 유엔기구나. 비정부기구(NGO), 외교관과 가족 등 외국인 천주교 신자들도 참석한다. 장충성당은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 신자들의 모임인 ‘공소(公所)’라고 할 수 있다.

 

– 교황의 방북 전망은.

▲ 교황님은 북한을 방문하시기를 원한다. 뜻은 확고하시지만, 북미 간 비핵화 회담이 꼬이면서 교황님의 방북이 불투명해진 측면이 있다.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관계가 풀리면 교황께서 분명히 방북하실 것이다. 시기와 여건이 문제다.

 

– 평화3000이란 단체명이 독특하다.

▲ 나눔·평화·화해를 추구하는 우리 단체의 정체성을 담았다. ‘하루에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을 평화기금으로 나누자’는 나눔, ‘기원후 3000년, 새로운 미래 3000년의 평화를 지향한다’는 평화, ‘한반도 3,000리에 화해의 씨앗을 심자’는 화해가 이름 속에 있다. 북녘 동포뿐 아니라 지구촌의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다.

뜻을 같이하는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일구고자 2003년 11월에 만들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목사·스님도 있다.

평화3000은 남북관계가 악화해 긴장과 갈등이 고조될 때도 대북지원 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해외동포단체나 국제기구, 국제 NGO 등을 통해 밀가루, 옥수수 등 식량과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긴급구호품을 지원했다.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이밖에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 교량, 주택, 학교 건립 등 개발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다.

 

※ ㈔평화3000 운영위원장인 박창일 신부(59. 예수성심전교회 소속)는 광주가톨릭대학 3학년 때 5·18을 겪었다. 고민과 방황을 많이 하는 동안 ’5·18 비극’의 뿌리는 분단에 있다고 판단, 남북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됐다.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9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북녘 동포 돕기 운동에 나섰다.

 

sungo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4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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