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론] 지금, 이 사람 – 민족의 화해를 위한 평화의 도구

가톨릭평론 제17호 (2018년 9-10월호)
“지금, 이 사람 – 민족의 화해를 위한 평화의 도구” (사)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목표로 2003년 창립한 (사)평화3000은 남북 간 교류협력과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사)평화3000의 대북지원은 주로 북한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조선카톨릭교협회와 파트너십을 통해 이뤄진다. 예수성심전교회 소속 수도자로서 (사)평화3000을 설립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를 만나, 북한과 북한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

(사)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

 

Q. 특별히 북한 문제나 통일사목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희 아버님이 피난민이시기도 한데, 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직접적 이유는 제가 신학생 때 겪었던 5·18 민주항쟁의 경험입니다. 광주가톨릭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우리 군인이 시민과 국민을 죽이고 탄압하는데, 신학생으로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젊은 나이에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아, 이건 분단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남북의 분단 상황을 이용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분단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인간의 존엄성도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없겠다는 고민을 그때부터 많이 했습니다. 이후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과학 서적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며 기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여름, 제가 필리핀에서 지낼 때였는데 우리 수도회에서 농민사목을 하던 필리핀 신부님이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다녀오셨습니다. 그 신부님이 북한에서 행사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와서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북한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멀리 필리핀에 있으면서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죄를 짓는 것처럼 굉장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행사에 참석했던 임수경 씨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에서 문규현 신부를 파견해 데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사제의 모습이라는 존경심에 저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명동에 있는 사제단 사무실을 찾아가 인사하고 그때부터 통일위원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화, 화해, 나눔을 지향하는 (사)평화3000
Q. 사제단 통일위원장 활동을 하다가 따로 (사)평화3000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중 1995년 북한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사제단에서 북한 돕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본당에서 기금을 모아 북한에 쌀을 보내려고 했는데, 정부에서 승인하지 않아 국내에서는 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일간신문에서 홍콩 카리타스에서 지원한 쌀을 싣고 가던 북한 선박이 타이완 근처에서 침몰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국제 가톨릭 구호단체인 홍콩 카리타스는 이미 1994년부터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홍콩으로 가서 대북지원 실무책임자인 캐시(Katharina Zellweger)를 만났습니다. 캐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과 비디오를 건네주어서, 북한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알려줬습니다. 그 자료를 국내에 가져와 언론사에 알리고 본격적으로 북한 돕기운동을 전개해서, 기금을 모아 홍콩 카리타스로 보내 북한의 인도적 지원을 도왔습니다.

이후 홍콩 카리타스를 통해 계속 북한을 지원하던 중 2000년 6월 15일에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남북한 관계가 좋아졌고 바야흐로 남북한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대북지원 활동을 전개할 좋은 기회를 맞았는데, 아무리 사제단이라고 해도 교회의 분위기를 눈치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웠습니다. 또, 전국 조직인 사제단에서 무언가 결정하고 실행하려면 의사결정 과정에 시간도 걸리고 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정신을 갖고 하되 좀 더 외연을 넓힐 수 있고,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하지만 공신력을 지닌 NGO 형태로 사단법인을 따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003년에 (사)평화3000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Q. (사)평화3000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주로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사)평화3000이라는 말은 새로운 삼천년기를 맞아 ‘평화’의 시대를 열고, 한반도 삼천리에 ‘화해’의 씨앗을 심으며, 하루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을 평화기금으로 ‘나눔’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창립했던 2003년부터 2008년 초까지는 남북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대북지원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기본적인 식량 지원도 했지만, 초창기에는 미국 제약회사에서 기증받은 감기약이나 비타민, 항생제 같은 기초 의약품을 저희가 세금이나 운송비 등 경비를 부담해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저희가 북한 장충성당으로 보내면, 장충성당에서는 병원이나 이웃주민 등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농업 물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비료나 못자리용 비닐을 보내서 북한의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게 하는 것이죠.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 스스로 농사를 잘할 수 있게 지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인도적 지원을 하다가 차츰 사회문화 교류협력으로도 방향을 넓혔습니다. 남한 사람들도 북한을 잘 모르고 북한에서도 남한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 교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것이 스포츠를 통한 교류사업이었습니다. 200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북한 쇼트트랙 선수들이 스케이트 날에 베이지 않도록 규정된 빙상복이 없어서 참가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 빙상복과 스케이트 등을 지원해 참가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이후 북한에 어떤 체육시설을 지원할지 상의하다가, 평양에 천연잔디 축구장이 있는데 겨울이나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거의 쓰지 못해서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조잔디 구장으로 현대화하는 사업을 2007년에 지원했습니다. 그 구장에서 연습한 북한 축구선수들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어서, 북한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당시 다른 일로 평양에 입국했는데, 공항 입국장과 식당 등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다 우리를 알아보고 “평화삼천리(북한에서는 그렇게 부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그 구장을 지원한 걸 다 알았던 거지요.

그러다 2009년에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 5·24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이 전면 중단되었고, 그 이후로는 인도적 지원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외동포 단체들을 통해서 조금씩이나마 계속 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16년 말에 ‘민족화해상’(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경향신문사 공동주최)도 받았습니다.

어쨌든 2009년 이후로는 대북교류가 거의 중단된 상황이라 동남아시아 개발구호사업을 확대하면서, 그동안 인도적 대북지원을 하던 민간단체들을 모아 ‘인도적 대북지원을 위한 대화와 소통’을 꾸려 상호협력과 정보교류를 위한 네트워크를 조직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남북협력기금 같은 공모사업에 응모하며 경쟁하다 보니 각자 진행하는 사업을 공개하지 않고 폐쇄적이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민간단체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고 정보교환을 하며 대북지원의 실무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북한을 지원한다고 하면 ‘퍼주기’라거나 ‘핵개발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냉전 시대의 이념 속에서 대북지원 사업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와 그 의미는 무엇인지요?

우리가 북한에 퍼주는 바람에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했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을 정치권에서 악용해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평화3000은 남북 간의 화해를 위해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정치적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 회원 중에서는 오히려 “왜 지원을 안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북한을 지원하느냐고 반대하는 사람은 하지 않으면 되고, 반대로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원하면 됩니다. 서로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이를 인정해야지, 획일적으로 해라 말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평화3000은 설립목적이 남북의 화해를 지향하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이나 교류협력 사업을 통해 남북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단체의 설립목적이기 때문에 이전 정부의 온갖 압박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적절한 방법을 찾아 해왔습니다. 이번 가을에도 북한에 묘목을 보내 나무를 심는 운동을 하려 합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북한교회와 북한 신자들
Q. (사)평화3000의 대북지원 사업은 주로 조선카톨릭교협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창립 초기 사업도 평양 장충성당에 콩 우유 공장을 건립하는 등 북한교회라는 창구를 통해 대북지원을 했는데, 왜 그렇게 하시는지요?

사제단 통일위원회 활동을 하며 1998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카톨릭교협회 대표였던 장재언 사무엘 위원장과 현재 위원장인 강지영 바오로 당시 서기장 등 북한 천주교 인사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에도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던 때라 서로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교류하고 협력할 방안을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을 지원하던 카리타스는 국제조직이라 그 파트너가 외무성산하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였습니다. 정치조직보다는 교회를 통해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북한교회 인사들과 만난 이후에는 북한 장충성당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했습니다.

 

Q. 남한 신자들은 북한교회 신자들이 상당수는 위장된 신자이고, 공산정부의 지시에 따라 연극을 하듯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자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지도자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 번은 평양에 다녀온 며칠 뒤 시내에 나갔다가 주교님을 만났는데, 주교님이 장충성당에서 미사했냐며 “박 신부, 그 사람들 진짜 신자 맞아?” 하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주교님께 딱 한 마디 했습니다. “주교님, 우리 성당에 지금 신자들이 3,000명인데 그 사람 중 진짜 신자가 몇 명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니 주교님이 깜짝 놀라셨어요.

우리는 독재정권 때부터 북한에 있는 신자는 가짜로 만들어진 신자라는 세뇌를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2000년 7월에 수녀님 한 분을 모시고 평양에 간 적이 있는데, 장충성당 신자들이 그 수녀님을 보자마자 우르르 몰려가서는 “수녀님, 정말 잘 오셨다”라고 눈물까지 보이며 반가워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눈빛을 보며, 이 사람들은 정말 연극을 하는게 아니라는 느낌이 확 왔습니다. 어릴 때 본 수녀님의 기억을 안고 있던 이들이 몇십 년 만에 수녀님을 만나니 발까지 동동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저절로 알게 되는 거지요. 그건 말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나 눈빛으로도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주교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린 거고요.

모 교구에서는 사제들에게 방북 때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지 말라는 조처가 내려졌습니다. 교구장이 보기에 북한 신자들은 가짜 신자이고, 또 북한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성체를 영하면 성체에 대한 모독이라며 금지했습니다. 저는 교리적으로는 그게 맞는지 몰라도, 북한이라는 특수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조처라고 봅니다. 북한에는 나름의 체계가 있으니, 그 안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죽으라는 이야기잖아요. 북한 신자들에게 남한교회의 요구에 맞춰 순교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거지요.

특히나 고해성사의 경우는 더욱 그래요. 제가 북한 사람들에게 고해성사에 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사제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해성사는 일대일 만남인데, 그렇게 만나면 북한 정부는 그 신자가 군사 비밀을 이야기하거나 사제인 제가 그 신자에게 무언가 지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없더라도 그것을 북한 정부에서 문제 삼으면 고해성사의 비밀을 말할 수 없는 사제는 결국 당국에 체포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간에는 이러한 특수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쪽 교회에서는 교리에 따라 그렇게 방침을 정했고, 실제로 이후 평양에 간 사제가 미사를 하지 않고 북한 신자들이 진행하는 공소예절에만 참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평양에 갔을 때, 북한 신자들이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예수님은 길잃은 양을 찾아 나서셨는데, 자신들은 버려진 어린 양보다도 못하냐고요.

저는 설령 북한 신자들이 정말 연극을 한다고 해도, 100명 중 단 한 명의 신자를 위해서라도 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명도 없고 전부 연극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읽고 선포할 좋은 기회인데 그 기회를 왜 포기합니까?

 

Q. 우리는 대부분 북한교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신부님이 만나보신 북한교회와 신자들은 어떤가요?

북한에서는 승인된 장충성당에서만 전례 거행이 가능합니다. 장충성당은 장재언 전 위원장의 어머니께서 독실한 신자라 그분이 큰 비용을 내고 북한 신자들이 돈을 모아 스스로 지은 성당인데, 북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1988년에 지어져서 올해 30년이 되다 보니 물도 새고 난방이 거의 안 되는 등 시설이 낡고 열악합니다. 아직 사제가 없으니 매주 공소예절만 합니다. 남포와 원산에도 공소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직접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개신교는 평양에 2개 교회가 있고 지역마다 가정교회가 있으며, 불교도 전통 사찰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만 아직 사제가 한 명도 없지요. 사회주의 국가라 외국인 선교사가 가서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도 영어교사나 사회복지사, 교포사목 등 다른 방식으로 가서 활동하지, 기본적으로 선교 활동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북한교회의 신자들은 두 종류입니다. 예전 한국전쟁 전에 세례를 받았던 나이 드신 분들이 주축이고, 그분의 자녀 세대인 40~50대 신자가 있습니다. 장재언 전 위원장도 한국전쟁 이전에 평양교구의 미국 주교님에게 견진성사까지 받았습니다. 요즘엔 더 젊은 청년들도 있는데, 그들의 부모가 신자라서 장충성당에 데려와 교리를 배우게 해서 세례를 받은 이들입니다. 신자가 주는 세례도 유효하니, 그렇게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거죠.

북한 정부의 종교정책 변화에 따라 1988년에 장충성당을 짓고 조선카톨릭교협회를 설립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을 통해 자료를 구해서 번역해서 신앙생활을 재개했다가 이후 남한교회의 전례서나 기도서 등으로 다 맞추었습니다. 미사경본이나 성가책, 기도문도 표기법만 북한식일 뿐 내용은 다 똑같습니다. 남북한의 미사전례나 기도문, 성가가 똑같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북한 신자들이 그렇게 북한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도 대단한 일이죠.

이렇게 기반을 마련한 사람은 장충성당 차성근 율리오 회장이라는 분입니다. 2000년 초에 결핵으로 돌아가셨는데, 이분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분입니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꿈이 사제여서, 언젠가 신학을 공부할 수 있으면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그 꿈을 간직하고 평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이분이 장충성당의 모든 실무를 맡았고, 중국에서 천주교 관련 자료들을 들여와서 번역하는 등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또 고영희 수산나라는 여성 부회장도 있었는데, 이분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너는 천주교 신자다. 내가 너 어렸을 때 수산나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줬다. 내가 죽더라도 하느님 믿고 살아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평생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이 세례받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다가 그 유언을 듣고 너무 놀라서, 장충성당에 찾아와 차 율리오 회장에게 교리를 배우고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서 여성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이 두 분이 『천주교를 알자』, 『신앙생활의 걸음』 같은 천주교 교리서를 만들면서, 북한교회를 재건하는 데 큰 노력을 했습니다.

 

평양 장충성당의 미사모습

평양 장충성당의 미사모습

 

북한에 갔던 초창기에는 장충성당에 100여 명이 미사에 참여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북한에 간 2013년 장충성당 25주년 미사 때는 70여 명밖에 안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전에 세례를 받았던 분들은 하나둘 돌아가시고, 젊은 세대는 많이 늘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줄어듭니다.

 

Q. 북한 신자들도 남한교회에 대해서 좀 알까요?

북한 신자들도 남한교회를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평양에 가서 미사할 때마다 남한교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기도회 할 때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한다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 외에는 일반 신자들이 남한교회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장충성당의 간부 신자들은 남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잘 압니다. 저는 주교회의 일은 잘 모르는데, 어떨 때는 저보다도 더 많이 알더라고요. 장재언 전 위원장은 천주교 대표이면서, 북한에서 인정하는 5개 종교(개신교, 불교, 천주교, 천도교, 정교회)를 대표하는 조선종교인협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또 우리의 국회의원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고, 적십자사 총재격인 조선적십자사 위원장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강지영 현 위원장은 장재언 위원장의 모든 직책을 물려받았습니다. 정치적으로 아주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남한의 정세나 교회 사정을 아주 잘 압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신앙인의 역할

Q. 올해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이뤄지며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 평화체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복음적이지도 않고 남북이 제대로 화해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혜택을 주고, 북한은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도, 사회문화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상호주의 원칙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고 신앙인이잖아요. 우리가 무언가를 지원하니까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돕는 것입니다.

저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자리 잡으려면 먼저 교회 구성원들이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런 북한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어떤 정치세력에 의해서 가상으로 만들어진 북한만 있지, 실제로 그런 북한은 없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야, 그에 따라 사목적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교회의 정신, 자비하심과 겸손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갖추고 북한과 대화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정치권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자원이 많고 노동력이 싸다고 대상화하면서 접근하면 올바른 교류와 협력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평화의 사도,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그렇지 못합니다.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신앙이 되려면, 북한을 제대로 알려고 공부도 해야 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할 가톨릭 신앙인들이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고 분단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라면 평화의 도구가 되어 행동하는 신앙인, 실천하는 신앙인, 함께하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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